관계: 그 빛과 그림자 9-3/3

관계: 그 빛과 그림자 9-3/3

지미현 1 512 2
혜란은 혹시 잘 못 전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숙사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기숙사 건물 밖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오스카…?’

혜란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한번에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지가 그녀의 심장 박동이 커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당당히 보이려 애쓰며 말했다.

“여 기 어 떻 게 오 셨 어 요?”

“어… 잘 있 었 니?” 혜 란 의 목 소 리 를 들은 그는 뒤돌아서며 반갑게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의 특유의 인자한 얼굴과 미소는 혜란의 그에 대한 원망이 눈 녹듯 녹아들었다.

“못본 사이에 더 많이 성숙해진 것 같네.. 허허”

“잘 계셨어요?”

“응, 항상 그렇지…”

“어…엄마는 요? 같이 안오셨어요?”

“응. 혼자왔다”

“…”

갑자기 할 말을 잊은 혜란이 고개를 숙이고, 신고 있는 쪼리 움직이며 아스팔트 바닥을 긁었다.

“우리 어디 좀 가서 앉을까?”

“네… 저기 카페테리아..”

“밥은 먹었니?” 혜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물었다.

“아직요”

“그럼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누자꾸나”

잠시 망설이던 혜란에게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잠깐 계세요. 옷 갈아입고 올게요”

혜란은 헐렁한 티와 낡은 트레이닝 반바지를 입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다고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방으로 올라가는 동안 몇몇의 궁금한 눈들이 그녀를 따라오며 물었다.

“혜란, 누구야?”

“아버지는 아닌것 같은데… 꽤 멋진데…”

혜란은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걸어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가자 룸메이트인 타냐가 들어오는 혜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데이트?”

“아니야”

혜란은 헐렁한 티를 벗고, 얇은 니트 소재의 흰 반팔 티를 꺼내 입었다. 목이 비대칭으로 길게 파여 한쪽 어깨와 브라 끈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게이치 않았다. 트레이닝 반바지를 벗고, 깨끗하게 세탁해서 잘 접어 놓은 청바지를 꺼냈다. 바지를 입기 전 그녀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몸을 틀어 뒷모습을 체크했다. 침대에 걸터 앉아 한쪽 다리씩 끼워 넣고, 일어서며 바지를 끌어 올려 단추를 채웠다. 그녀의 매끈한 몸매가 타이트한 청바지에 꽉 맞으며 거울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이 단번에 섹시해 보였다. 어깨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빠르게 빗으로 빗고는, 립클로즈를 잽싸게 입술에 바르고 문지르자 입술이 촉촉해졌다. 그 모든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그녀의 룸메이트가 웃으며 말했다.

“데이트 맞네!”

“아니라니까!” 혜란도 웃으며, 그녀에게 말하고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은 시내에 위치한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에 들어갔다. 그는 이 지역이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하게 식당을 찾아 왔다. 혜란은 와인을 곁들여 오랜만에 맛보는 질 좋은 스테이크에 기분이 좋았다.

“여기 와 본 적 있으세요?” 식사를 하며, 혜란이 물었다.

“응, 옛날에 출장 때 몇 번 와 본 적 있지”

“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늘…”

“그냥, 너를 본 지도 꽤 오래 되었고, 이번달에 보낸 수표도 되돌와왔더구나”

“아..네, 아직 생활비가 남아있어서요…”

혜란은 홀로서기 위해 틈틈히 학교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며, 그 동안 용돈을 아끼고 모아 왔었다.

“무슨 문제 있니?”

“아뇨.. 이제 제가 벌어야죠. 언제까지 아저씨 도움을 받을 순 없잖아요. 저도 이제 성인인데…”

“그렇구나. 이제 우리 혜란이도 어느 덧 그렇게 되었어. 남자 친구는 있니?”


“친구들은 많아요”

“언제부턴지 우리 사이에 벽이 생긴것 같았단다. 그 전엔 참 친한 것 같았는데 말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봤어요.”

“…” 남자는 말없이 혜란의 말이 계속 되기를 기다렸다.

“아침에 엄마 방에서 나오시는…”

“아… 그…그랬구나” 갑자기 꺼낸 혜란의 말에 그는 약간 당황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아저씨하고 엄마 사이의 일이니까요”

“그..그건…”

“괜찮아요. 설명 안하셔도 돼요” 혜란이 그의 설명을 잘랐다.

다시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혜란은 와인을 마시는 그를 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그의 시선을 피했다. 혜란은 그에게서 풍기는 중년의 멋진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다. 유럽계 백인다운 깊은 눈과 오똑한  콧날, 남자다운 턱선과 구렛나루부터 양 뺨과 턱 주위로 잘 정돈된 쉐이브하지 않은 모습이 남성다와 보였다. 그의 굵게 웨이브진 길지 않은 갈색 머리칼은 세련되보였다. 혜란은 언제부터 그가 남자로 보였는 지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눈 앞에 그가 자신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보고 있으니 혜란은 심장 박동이 빨리지는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은 혜란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근데, 무슨 일때문에 오신거에요?”

잠시 침묵하던 남자가 말을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큰 회사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해서 사업을 확장하는데, 이곳에 사무실을 하나 운영하게 됐거든…”
혜란은 거기까지만 듣고도 마음 속으론 반겼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근처에 아파트를 하나 구할려고 하는 데 방이 넉넉한 곳을 얻어서 너만 괜찮다면 같이 있으면 어떨까해서… 어차피 난 가끔… 아마 한달에 한두번 이곳에 오니까 너가 편하게 있을 수 있을거야”

혜란은 망설였다. 당장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거의 반년만에 나타난 남자에게 단번에 그의 제안을 승낙 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혜란은 겉으론 아니지만 속으론 자신도 모르게 그를 남자 친구처럼 대하고 있었다.

“생각해 볼께요”

“그래, 당장 대답 안해도 돼. 다음 학기 시작 전 에 기숙사 사인하기 전에 결정하자. 난 내일 부터 집을 알아 봐야 하니 한 며칠은 여기 머무를 거다. 사무실은 다음주에 집기들 다 들어가면 직원들이 출근 할 거야.”

지난 이야기를 하며 30분을 더 머물며, 디저트까지 끝낸 두사람은 식당을 나왔다. 발렛파킹 된 자동차를 기다리는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주차요원이 가져 온 차를 받아 출발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다.

“오늘 금요일인데 내가 황금 같은 금요일 밤을 뺐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아.. 아니에요. 어차피 아무 약속도 없었어요”

“그럼… 괜찮으면, 내일 집 보러 같이 갈까?”

“… 그럴께요” 잠시 망설인 혜란이 대답했다.

“내일 아침 10시에 데리러 갈께, 괜찮아?”

“네, 좋아요” 혜란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어느덧 차는 혜란의 기숙사 앞에 도착됐다. 혜란은 그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내일 다시 그를 볼 수 있는 것에 안도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혜란이 내린 자리의 창을 열고, 상체를 숙여 혜란이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열린 창을 통해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혜란이 뒤돌아 보자 그는 손을 흔들었고, 혜란은 자신도 모르게 같이 손을 흔들고 뒤돌아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으로 돌아오자 룸메이트, 타냐는 파티에 갔는 지 그들의 방은 비어있었다. 입은 옷 그대로 침대에 위에 누운 혜란은 천정을 보며 그와의 저녁시간을 떠올렸다. 혹시 실수한 것은 없는 지 매순간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떠올릴려고 할수록 그의 모습은 그녀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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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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